글 | 편집위원장 안종주

스트레스 없는 사회는 현대인들의 꿈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현대 산업 사회에서 스트레스는 자연스럽게 맞이해야 할 불청객과 같은 존재이다. 이제는 스트레스를 피할 것이 아니라 어떻게 하면 이를 적절히 해소해야 좋을지 그 방법을 찾아 실천하는 것이 중요하다. 우리의 전통적인 스트레스 해소법은 흡연과 음주였다. 실은 흡연과 음주가 스트레스를 더욱 더 심하게 만든다는 연구 결과가 최근 속속 나오고 있는 것을 보면 스트레스를 해소하기 위해 술, 담배를 한다는 것은 핑계에 지나지 않는다. 단지 중독된 사람들이 자신의 중독을 인정하기 싫어 둘러대는 말일 것이다.

스트레스 없는 직업은 단 하나도 없을 것이다. 대통령도, 재벌총수도, 대학교수도, 월급쟁이도, 농어민도, 가정주부도 모두 나름대로의 스트레스를 받는다. 가장 자주 스트레스를 받는 직업을 몇몇 꼽으라고 하면 매일매일 치열한 경쟁을 해야 하는 언론인과 생명을 다투는 수술을 해야 하는 의사를 들 수 있다. 필자는 오랜 언론인 생활을 해서 누구보다도 언론계의 음주문화를 잘 알지만 의료계,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의사 사회의 음주문화도 궁금했다. 그래서 2005년부터 한국건강관리협회를 맡아 최근 직원간의 소통문화 혁신을 위한 인트라넷 개통 등 조직혁신 운동을 벌여 조직에 새 바람을 불러일으키고 있는 의사 출신의 이순형 회장을 만나 건강증진 사업과 음주문화관 등을 들어보았다. 이 회장은 서울대 의대에서 기생충학을 전공한 의학자이며 서울대 의대 학장 등을 지냈다. 97년부터 10년간 국제기생충학회지 편집위원을 지냈으며 한국과학기술한림원 종신회원, 대한민국 학술원 회원이기도 하다.

◈ 한국건강관리협회를 모르는 사람도 있을 테니 어떤 일을 하는 곳인지 간단하게 소개해주시죠.

▷ 쉽게 말하면 암검진, 건강검진을 하는 공공기관으로 생각하시면 됩니다. 1964년 기생충박멸협회로 시작해 그 임무를 충실하게 마치고 1982년 지금의 협회로 다시 만들어졌습니다. 검진 사업 말고도 에이즈 상담, 금연운동 등도 펼치고 있고 신생아선천성대사 이상 검사도 하고 있습니다. 라오스, 북한 등에서의 기생충박멸협력 사업도 2000년부터 벌이고 있고요. 성인병 등에 대한 건강강좌도 최근 활발하게 벌이고 있고 비만 퇴치, 절주, 운동, 영양 등 건강증진 사업도 전국적으로 펴고 있습니다.

◈ 제가 아는 의사들 가운데 술을 잘하시는 분이 꽤 있는데 회장님께서는 주량이 어떻게 되십니까.

▷ 젊었을 때는 소주 한 병 가량 됐는데 이제는 나이(71살)도 있고 해서 석 잔 이상 마시지 않습니다.

◈ 옛날 의대에 다니시거나 학교에 계실 때 술 문화, 즉 의사들의 음주문화는 어떠했습니까.

▷ 당시는 의국 입국식 때 소주를 구두에 부어 마시거나 큰 대접에 쏟아 붓고 돌아가며 마구 마시곤 했죠. 술 문화는 임상과나 교실의 주임교수가 얼마나 술을 좋아하느냐에 따라 많이 달랐죠. 주임교수가 술이 세면 제자들도 어쩔 수 없이 술을 자주 마셔야 하고 술이 약하면 제자들은 자신의 주량대로 마셨죠. 저는 다행히 은사께서 술을 즐기지 않아 술 때문에 어려운 일은 없었습니다.

◈ 그동안 함께 일했던 의사들 가운데 음주와 관련해 재미있었던(?) 일화를 소개해주시죠.    

▷ 군의관으로 있을 때 선배 가운데 한 분은 하도 술을 좋아해 자주 고주망태가 되어 이불 위에 오줌을 눌 정도로 문제가 있었던 경우도 있었죠. 또 의대 주임교수 회의 때 회의 전 칵테일 시간에 한 친구가 술을 많이 마셔 회의에서 한 선배가 이런 저런 말을 하자 대뜸 반말로 당신은 주식시장에나 관심이 있는 사람이 왜 말이 많으냐고 말하는 등 추태를 부려 말썽을 빚은 일도 있었습니다. 모두 과음이 만들어낸 웃지 못 할 일들이죠.

◈ 의사로서 술을 어떻게 보십니까.

▷ 술은 음식이 아니라 약과 같습니다. 약을 과용하면 부작용이 생기고 독이 될 수 있듯이 술도 자신의 주량, 적절한 음주량을 지키지 않으면 몸에 심각한 부작용이 생기고 심하면 중독이 됩니다.

◈ 하루빨리 고쳐야 할 우리의 음주문화는 어떤 것입니까.

▷ 술을 강권하는 습관을 바꿔야 합니다. 서양에서는 파티 때 처음 만난 사람과 서먹서먹한 것을 없애려고 술을 마시는데 우리는 마치 기억을 없애기 위해서 마시기라도 하는 듯 정신없이 들이킵니다. 칵테일 한 잔으로 한 시간을 보내야 합니다. 수작문화, 즉 술잔을 주고받는 문화도 언제부터 생겼는지는 모르지만 하루빨리 사라져야 합니다. 제가 아는 한 일본, 중국, 서양국가 어디에서도 술잔을 돌리는 일은 없습니다. 우리는 잔을 주었는데 왜 빨리 마시고 다시 주지 않느냐고 시비를 겁니다. 그러다 싸움까지 벌어지기도 하죠.

◈ 바람직한 음주문화를 위해 어떤 일들을 해야 할까요.

▷ 경로당이나 노인정에 가면 할 일이 없어 소일거리로 술을 드시는 노인들도 있습니다. 나이 들어서도 즐길 수 있는 스포츠나 취미활동을 갖는 일이 중요합니다. 이는 물론 젊었을 때도 해당됩니다. 스트레스를 받거나 했을 때 이를 술로 풀려고 하지 말고 건전한 것으로 풀어야 합니다. 정부는 사람들이 건전한 여가활동이나 운동을 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는데 힘을 쏟아야 합니다. 경로당이나 노인정 문화도 바꾸는 일에 예산을 더 많이 투입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