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근호 | 을지대·중독재활복지학

술이 없는 사회를 생각해 본다. 제사를 지내면서도 제주가 없고, 송년회에서도 술이 없으며, 계모임이나 동호회에도 술이 빠진다면? 오랜만에 고향 친구를 만나도 술을 마시지 않고, 비가 오는 외로운 날 소주 없이 지내며, 흥겨운 축제에서도 축배를 들지 않으며, 우승자를 위해서도 샴페인을 터뜨리지 않는다면 사회는 어떠한 모습일까?

반대로, 매일매일 술 마시느라 늦게 귀가하고 이로 인해 심한 부부 싸움에 가정이 시끄럽고, 화가 날 때마다 술을 마시고 스스로를 자제하지 못해 타인을 구타하거나 기물을 파손하고, 빈번한 음주 운전으로 운전면허가 취소당하고, 술 취한 상태에서 근무하거나 결근을 하여 직장에서 해고당하고, 인생을 비관하여 다시 음주를 한다면 또 그 사회는 어떠한 모습일까?

우리의 현실은 어떠한 모습에 가까울까? 세상을 술이 없는 세상과 술 문제로 가득한 세상으로 양분할 수는 없겠지만, 2007년 가을의 대한민국은 그 중 어떠한 모습에 가까울까? 성인의 20%에 가까운 사람들이 문제성 음주자이고, 그 중 절반 가까이 알코올 의존이라는 것이, 2만 달러 소득의 선진국 문턱에 있다는 대한민국의 현실이다.

술은 삶에 활력소가 되기도 하고, 인생을 풍요롭게 하며, 명절을 더 뜻 깊게 할 수 있다. 그러나 수능 시험 100일 남았다는 기념으로 술을 마시고, 대학 입학을 환영한다는 핑계로 만취하고, 회식은 술의 종류를 바꾸어 가며 2차, 3차 이어가야만 동료애가 싹튼다고 생각하는 이 사회에서 술이 과연 활력소의 역할만을 충실히 하고 있는 것일까?

술은 지나치지 않을 때만 본분을 다하게 된다. 세상에 술을 이길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술을 견딜 수 있는 양이나 술 문제가 발생하기까지 걸리는 기간에만 차이가 있을 뿐이다. 술은 우리를 풍요롭게도 하지만 지나친 술은 우리를 병들게만 한다. 술의 신이라는 디오니소스도 결국은 이탈리아의 화가 카라바조의 그림에서 병든 모습으로 그려지고야 말지 않았던가? 조만간 날이 추워지고 연말이 다가온다. 술 마실 핑계가 많아지는 때다. 술로 인해 우리 삶이 황폐해 지는 일이 더는 없기를 꿈꾸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