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말연시가 되면 우리는 무척 바빠진다. 한 해가 가기 전에 마무리를 해야 되는 것이 많기 때문이다. 이러한 마무리에는 두 가지가 있다고 여겨진다. 업무 그 자체에 대한 마무리와 사람들을 만나는 일에 대한 마무리이다. 이 중 사람들을 만나는 것은 지난 한 해 동안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건강하게 잘 살아왔다는 것을 서로 격려하고, 안 좋은 일은 잊으면서 새로운 출발을 위한 각오와 축복을 나누는 자리를 마련하는 것이다. 이 일이 때로는 업무보다 더 우선순위를 가지기도 한다.

망년회, 송년회 = 술 마시는 모임?

망년회 또는 송년회로 일컬어지는 이 모임은 사실상 「술 마시는 모임」이라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만나는 대상도 차별적으로 구분되어 있다. 자신이 아는 모든 사람을 한꺼번에 만나 한 해를 마무리하는 것이 아니라 대상에 따라 배타적으로 구분하여 만난다. 이러다 보니 만나야 하는 대상이 다양한 사람은 모임이 한 달 동안 계속될 수도 있다. 이런 사람에게는 결국 한 달 동안 술자리가 계속되는 셈이다.  

한 자리에 모여 얼굴을 맞대고 술을 마시면서 「위하여」를 해야만 한 해를 정리하고 새해가 축복과 희망으로 가득 차게 되고, 그렇게 하지 않으면 새 해는 두려움의 대상이 되는지는 모르지만 우리는 그렇게 하고 있다. 송년회를 하는 것 그것보다도 문제가 되는 것은 그 시간이 바로 폭음과 과음의 자리가 된다는 점이다.

지난 일 년을 반추해보고 새로운 각오를 세우는 「재충전을 위한 전환」의 자리가 아닌 피로와 건강에 반하는 것을 쌓아가는 「자해의 누적」을 위한 자리이다. 이 자리에 참석하는 사람들 모두는 그 자리가 폭음과 과음을 강요하는 자리라는 것을 너무나 잘 알기 때문에 「오늘은 술 좀 자제해야지」라는 각오(때로는 비장한 각오를 포함함)를 하고 모임에 온다. 하지만 결과는 「역시나」로 과음과 폭음을 하게 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왜 그렇게 되는가? 집단의 논리가 개인의 바람에 우선하는 현상 때문이다. 다른 집단구성원에 대한 배려(술 잔을 거절할 수 없는) 또는 집단 자체를 위해(분위기를 깨지 않기 위해) 개인의 건강과 안녕을 과감하게 던지는 「자해적 행동」은 보상을 받지만 그렇지 않고 개인의 건강과 안녕을 먼저 생각하는 집단구성원은 집단에 의해 처벌을 받을 것이라는 믿음이 우리의 음주행동을 좌지우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취하는 송년회를 합리적이고 이성적으로 만들 수 있는 방법은 없는 것인가? 개인의 건강과 안녕이 망가지도록 과음과 폭음을 하지 않으면서도 한 해를 잘 마무리할 수 있고 새해를 희망과 축복 속에서 맞을 수 있는 방법은 없는 것인가? 이를 위해서는 우리가 가진 음주에 대한 믿음을 바꾸어야 한다. 이 일은 쉬운 일이 아니다. 누군가가 고양이 목에 방울을 다는 일이다. 개인의 건강과 안녕이 집단의 잘못된 믿음보다 우선해야 하며 그렇게 되기를 원하지만 아무도 그렇게 할 용기를 내지 못한 채 우리는 그렇게 과음,  폭음하는 일을 하고 있는 것이다.

한 사람의 용감한 생각과 행동으로 술없는 송년회는 얼마든지 가능하다

누가 고양이 목에 방울을 달 것이며, 어떻게 달 것인가? 용감한 개인이 달 수 있다. 그런 사람은 집단 전체를 통제할 수 있는 권력을 가진 사람이어야 한다. 한 사람의 생각과 행동으로 술 없는 송년회는 얼마든지 할 수 있다. 기업의 CEO가 술 없는 송년회, 술 없는 회식을 선언하고 이를 지켜나가는 것에서 볼 수 있다. 최근에는 이런 일을 점점 쉽게 볼 수 있게 되었다. 술 보다는 봉사하는 송년회, 문화행사로 대신하는 회식 등 과음과 폭음의 상징이던 모임들이 건강한 모습으로 변화하고 있다. 그러나 용감한 개인은 많지 않다.

개인이 할 수 없다면 결국 개인의 힘을 모아야만 한다. 개인의 힘을 모은 조직이 있을 수 있다. 조직적 차원 즉, 회사가 술 없는 송년회, 회식을 회사원에게 요구할 수 있다. 회사 전체의 기업 생산성 향상을 위해 회사가 음주가 아닌 다른 대안을 제공하고, 술 취한 근로자가 직장에서 일하지 않도록 하는 일을 조직적으로 할 수 있다. 회사 내규로 정해서 시행하는 강력한 방법에서부터 자율적으로 실천할 수 있도록 하는 것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차원으로 술 없는 송년회를 만들어 갈 수 있다. 그것이 바로 회사의 생산성 향상을 위한 방법이기 때문이다.

회사가 아닌 집단의 송년회, 동창회의 경우는 어떤가? 이것도 조직이 한다. 동창회에 모인 근로자들이 송년회에서 과음·폭음한다면 다음 날 회사 업무에 손해를 끼칠 수밖에 없다. 따라서 회사의 업무규정이 이런 손해를 용납하지 않는다면 근로자는 송년회에서 당연히 과음, 폭음을 하지 못할 것이다.

조직이 이런 내규를 마련하도록 하는 것은 회사를 구성하고 있는 개인들이라고 생각한다. 술 자리의 술 잔을 거절하는 용기가 없다면 회사가 술이 덜 깬 채로 근무하는 근로자는 불이익을 준다는 내규를 만드는 일에 나서면 된다. 자신의 건강, 가족의 행복, 회사의 생산성, 국가의 생산성이 향상되고 모두가 한층 높은 삶의 질을 누릴 수 있는 유일한 대안이다. 연말연시 비틀거리는 우리의 음주문화를 바로잡을 수 있는 대안은 음주에 관한 합리적인 내규를 직장에서 마련하는 것에서부터 찾을 수 있다고 본다.  

김광기 | 인제대학교 보건대학원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