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기종 | 국민건강보험공단 법규부

꽃이 사람을 미혹(迷惑)하는 것이 아니고

사람이 스스로 미혹하는 것이다.

술이 사람을 취하게 하는 것이 아니고

사람이 스스로 취하는 것이다.

만약에 그 뉘우침을 잘 알고 있다면

처음부터 그런 짓은 저지르지 않았을 것을…

       - 정 철 -

필자는 지난 호 기고한 글에서 「술로 인해 건강도 망치고 건강보험 혜택도 못받는 경우가 실무적으로도 허다하다」라는 취지로써 몇가지 「총론」적인 사례들을 든 바 있다.

예컨대 음주운전의 경우는 사고의 위험성을 예견하고도 자의로 심신장애를 야기한 것이기에 사고당시 「심신미약」상태에 있었다 하더라도 이른바 「원인에 있어 자유로운 행위」에 해당하여, 형사 처벌은 물론 국민건강보험법에 의해 보험급여가 제한되는 사례라고 하였다.

또한, 야간에 주점에서 타인과 사소한 시비가 붙어 폭행을 당하자 이에 대항하여 응수하다 부상을 입고 진료를 받은 경우에도 국민건강보험공단은 「폭력행위등처벌에관한법률」 위반에 기인하였음을 사유로 보험급여를 제한하거나 이미 이루어진 급여를 부당이득금으로 환수하는 사례도 빈번한 실정이다.

따라서 이번 호에서는 「각론」차원에서 다시 한번 주당들을 「계(戒)」하고자 하는데, 보통 사람이라면, 위에서 예시한 바와 같은 「범죄행위」로 구성되는 부류는  상식적인 수준에서 생각해 보아도 명백히 법령에 위배되므로 비난을 받고 따라서 사회공동체의 「계(契)」와도 같은 건강보험 혜택을 받지 못함을 손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아래에서 소개할 사례는 술에 취해 도로에서 누워 자다가 교통사고를 당하였는데, 이 또한 「범죄행위」로 구성되어 보험급여 혜택을 받지 못했다는 다소 황당한 사건이라 하겠다(국민건강보험공단,「건강보험이의신청 결정사례집」, 2004.12.).

신청인은 2000. 6. 18. 23시경 술에 취해 충주시 봉방동 노상에 주차되어 있던 15톤 덤프트럭 밑에서 잠을 자다 차량이 출발하면서 좌측 앞바퀴로 신청인의 다리를 역과하여 좌측 경비골의 개방성 골절 등 부상을 입고 진료를 받았으며, 피신청인(국민건강보험공단)은 이 건 보험사고와 관련하여 발생된 보험급여비 20,962,320원을 운전자와 자동차 소유주에게 구상금 지급 소송을 제기하였으나, 청주지방법원 충주지원에서는 신청인의 과실이 60%에 달한다며 운전자와 자동차 소유주에게 구상금의 40%인 8,384,928원만 지급하라고 판결하였는 바, 피신청인은 나머지 12,577,390원을 신청인에게 부당이득금으로 환수고지 하였다.

살피건대, 국민건강보험법 제48조 제1항은 「고의 또는 중대한 과실로 인한 범죄행위에 기인」한 보험사고를 급여제한 사유로 규정하고 있고, 여기에서 「범죄행위」라 함은 형법에 의하여 처벌되는 범죄행위는 물론, 도로교통법, 철도법 등 특별법령에 의하여 처벌되는 범죄행위도 포함되는 것이므로, 도로교통법 제12장의 범칙행위도 위 범죄행위에 해당한다(대법원90누752, 90.5.22.) 할 것인데, 위 확인되는 사실에 의하면 신청인은 비록 술을 마셨다고는 하나 경험칙상 도로에 누워 잠을 자면 사고 발생 개연성이 매우 높다는 사실을 예견할 수 있었다 할 것이고, 도로교통법 제63조(현행 제68조)에서 「도로에서 교통에 방해되는 방법으로 눕거나 앉거나 또는 서있는 행위」를 엄금하고 있음에도 차도에서 누워 잠자다 부상을 입은 사실이 확인되고 이를 달리 볼 입증은 없다 할 것이므로, 신청인의 주장을 받아줄 수 없다. (제2004-347호, 부당이득금 환수고지처분 취소신청, 2004. 6.30.결정)

이 사건의 경우는, 신청인이 비록 취했다고는 하나 「명정(酩酊)상태」까지는 아니었기에 책임능력이 인정되어 보험급여가 제한되었다. 우리는 길거리에 쓰러져 인사불성인 취객들을 주변에서 흔히 목격하곤 한다. 그런데 최근(2005. 9. 3.) 서울에서도 이와 유사한 사고가 있었다(2005. 9. 4.자 주요 일간지).

20대 후반 청년이 새벽에 술에 만취한 채 천호동 도로에 주차된 타인의 승합차 밑에 머리와 가슴 등 상반신을 밀어넣고 잠을 자다 50㎝ 가량 움직인 차 바퀴에 깔려 늑골 4개가 부러졌다고 한다.

그러고 보면 우리나라에는 불행(?)하게도 너무나도 많은 자동차들이 범람하고, 그에 비례해 도로교통법을 적용받는 도로 또한 도처에 존재하니, 이와 같은 사례들을 보면 술에 취해 거리에서 잠들어 버리는 부주의한 행위로 인해 사상(死傷)은 물론, 곧바로 범법자로 둔갑할 수도 있다는 경종을 울리게 한다.

여기서 취객이 길거리에서 잠이 들었다가 윤화(輪禍)를 당했다는 위 사건들과 결부시켜 생각해 보건대, 일찌기 수필집 「명정(酩酊) 40년」을 저술했던 수주 변영로(1897~1961)는 자신의 일화 「야반 화장장행(夜半 火葬場行)」에서, 엄동설한에 만취상태로 홍제원(弘濟院) 인근 묘지에서 잠들었다가 깨어나 「하마터면 화장터에서 얼어죽을 뻔했다」는 웃지 못할 얘기를 전한 바 있다. 그는 당시에 묘지 근처를 지나가는 우차(牛車)에 의해 구조되었다는데, 이는 어디까지나 반세기 전의 시대상임을 감안하면 요즘 세상에는 음주 후의 귀갓길, 특히 찻길을 조심해야 할 듯 싶다.

한편, 동탁 조지훈은 「음주에도 무릇 18계단이 있다(酒道有段)」고 얘기하였는 바 그 최고(?)의 경지인 「열반주」단계는 술로 말미암아 다른 세상으로 떠나게 되는 사람이고, 그 다음 단계는 이미 이승사람이 아니니 단(段)을 매길 수 없다고 하였는데, 이번 호에 소개한 사례에서처럼 술로 인해 「범법자」가 되는 것에 앞서, 바로 자신을 위하여 그리고 사랑하는 가족을 위해서 폭음을 경계하는 노력이 필요함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