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코올의존자의 회복을 위한 지표 설정을 위해서는 신체‧정신‧사회‧영적인 면에서 성장경험을 토대로 진솔하게 자신을 돌아보는 것이 첫 걸음이며 「한 번 알코올의존자는 영원히 알코올의존자이며 회복이란 결과가 아닌 과정에 의미를 두고 싶다」라고 한 Y형의 체험을 소개하기로 한다.

 

신체적/생물학적 요인으로 유전적이며 술 체질이었음을 알았다

Y형(50세, 남)은 20대에 술을 마시기 시작하였지만 남들과는 다르게 술에 대한 욕심이 많았고 술꾼이라는 말이 어울릴 정도로 술을 마셨고 한마디로 술 체질이었다. 그는 군대 생활, 직장 생활을 하면서도 퇴근하여 술을 마시기 시작하면 보통 2~3차를 매일 마셨고, 매일 마신 술의 양을 보통사람들에게 이야기하면 거짓말이라고 할 정도의 폭주가 이었다.

그는 점차적으로 술에 노예가 되어가는 과정에서 1987년 31살의 젊은 나이에 어느 날 전날에 3차까지 술을 많이 마시고 난 후 직장 출근부에 싸인을 하려고 하니까 손이 많이 떨려서 싸인을 할 수 없었다. 손이 떨려서 글을 쓸 수 없었다. 한 두 시간을 그렇게 보내다 도저히 방법이 없었고, 숙취가 밀려오면서 더욱 그를 괴롭혔다. 하는 수 없이 남들에게 들은 이야기처럼 밖으로 나가 해장국을 시켜놓고 소주를 반병을 마시고 나니 언제 그러했느냐는 듯이 숙취는 물론 손의 떨림이 멈추었다. 이 후 몇 달 만에 회사의 잦은 결근 그리고 환시, 환청으로 이어져서 1988년 청량리병원 그리고 국립서울정신병원 알코올병동에 입원을 하게 되었다.

 

정신‧심리적 요인으로 과보호와 외로움 그리고 비독립적인 성향을 들어내다

Y형은 스스로 내성적이며 혼자 할 수 있는 자립감이 없이 성장하여 처음으로 하는 일들은 두려움을 느끼면서 자랐다고 회상하였다. 특히 시골에서 서울로 상경하여 사회생활을 시작을 하면서 외로움과 자신의 환경을 탓하면서 「나는 왜 이렇게 복이 없는 존재인가」싶어서 한탄의 세월을 보내게 되었던 것들이 많은 양의 술을 마시게 하였던 것 같다고 회상하였다.

군대에 입대를 한 곳은 강원도에 있는 공병대였는데, 그 시절만 해도 공병대에는 술이 많았다. 그가 최초로 경험한 필름이 끊기는 처음의 경험이었다. 직장 생활을 하면서 술에 취하여 상사를 폭행하기도 하고, 사무실 숙소의 침대에서 떨어져 웃음거리가 되기도 하고, 당직 근무 중에 술에 취하여 잠을 자다가 적발이 되어 시말서를 쓰는 등 무수히 많은 실수로 시말서를 한 달이면 몇 차례 써야하는 문제 직원이 되었다. 이렇듯이 그때에는 우리나라의 음주문화가 매우 관용적이며 초기에는 「내가 알코올의존자이면 우리나라의 술 마시는 사람 거의 모두가 알코올의존」이라는 왜곡된 생각을 하였다. 그러나 회복의 길에 들어서서 스스로가 알코올의존증(병)에 걸린 환자임을 인정하니 정상적인 음주가와 비정상적인 음주가를 구분할 수 있었다고 한다.

 

영적 요인으로 종교적 성장배경을 검토하면서 새롭게 신앙인으로 태어나다

그의 고등학교를 마치고 선배의 인도로 기독교에 입문을 하고 군대에 들어가서 술을 많이 마시고 방탕의 시간이 흘러감에 따라 점차로 신앙이라는 것이 멀어져 가면서 교회보다는 술이 좋았고 술이면 어떠한 일도 해결해 주는 것 같은 착각 속에서 누군가 종교관을 묻는다면 그는 거리낌 없이 술이라고 말을 하였다고 한다. 왜냐하면 술은 두려움과 고통들을 해결해 주는 해결사이었기 때문이라고 회상한다.

 

알코올의존은 치명적, 진행적이며 만성적이다

3개월 병상생활 속에서 평온함을 청하는 기도와의 만남은 그에게 성찰의 기회를 주었다. 퇴원 후 3일 만에 재발하여 어려움을 겪었으나 협심자의 도움으로 다시 일어나 회복의 길을 열심히 갔다. 가정과 사회적인 재활을 꿈꾸던 Y형에게 많은 시련이 있었다. 아내는 일본으로 떠났고, 잘 다니던 직장도 그만두게 되었고, 이혼을 하고 그리고 재혼 다시 재발, 한없는 연민과 증오 속에 한 달 정도를 술로 세월을 보냈다. 10여년 단주기간이 흘렀는데도 변하지 않고 더욱 많은 술을 마셨다. 왜곡된 생각과 망상 그리고 술 마시는 수법도 더욱 다양해 졌고 폐인이 되어갔다. 한 달 정도 장취를 하니 더 심한 금단(환시, 환천 등)을 경험하고, 끝내는 어머니와 아내의 손에 이끌려 입원을 하게 되었다. Y형은 그 때를 다음과 같이 회상한다.

「병원에서 깨어난 나는 자신을 돌아보기 시작을 하였고, 그토록 마음속으로 읊었던 평온함을 청하는 기도를 하고 싶어도 생각이 나지 않았다. 살아야 한다는 생각은 예전에 비하여 강하였지만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지를 알 수가 없었다. 생각을 거듭한 끝에 협심자에게 전화를 하게 되었고, 협심자는 나에게 평온함과 용기를 주었고, 12단계를 다시금 검토하기를 청하였고, 끝내 12단계적 삶으로의 전환만이 나의 살길임을 알게 되었다. 퇴원을 하여 새롭게 회복의 12단계 프로그램에 정기적으로 참석하며 영적성장의 길을 회복의 지표로 설정하였다.」

Y형은 지금 이 시간에도 다음과 같이 말한다. 「알코올의존으로부터의 회복은 영원할 수 없다. 결과가 중요한 것이 아니며 회복의 여정 그리고 위대한 힘과 함께 영적각성과 성장의 길만이 있다」

최근에 김성수의 ⌜잡념이 보배다⌟라는 책에서 「내 안의 모든 잡념을 깨워라! 마음의 평화는 잡념에서 시작된다! 복잡하고 불안한 마음을 당장 비우고 싶다면 끊임없이 머릿속을 휘젓는 잡념을 외면하지 마라. 잡념은 의식이 만들어낸 마음의 움직임이자 내가 살아 있음을 확인해주는 가장 유력한 증거다. 영화를 보듯이, 내 안의 모든 잡념을 바라보라. 마음이 움직이는 대로 그저 바라볼 수 있다면 번뇌도, 불안감도 더 이상 내 것이 아니다. 마음의 눈으로 차근차근 나의 진실을 살펴보는 것. 그것이 곧 마음을 평화롭게 하는 명상의 시작이다.」 라고 말한다. 그는 오늘도 12단계 치료공동체와 함께한다.

신양호 / 12단계 치료공동체원장, 사회복지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