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화정 | 중앙아동학대예방센터 상담연구팀장

많은 사람들은 스트레스가 쌓이거나 문제가 있을 때 술을 마셔 그 상황을 잊어버리기를 원한다. 그들에게 술은 쓸쓸한 마음을 달래는 친구가 되기도 하고, 화를 풀게하는 도구가 되기도 한다. 그러나 매일 술이 술을 마시고, 술의 힘을 빌리지 않으면 생활을 못하는 사람도 있다.

이처럼 술은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는 바람직한 도구이기 보다는 자제력을 잃게 하거나, 폭력을 휘두르게 하는 경우가 더 많다. 그런데 더 심각한 것은 술을 마시고 가장 힘 없고, 보호받아야 할 아이들에게 폭력을 행사하고 고통을 주는 경우가 있다는 것이다. 그러다보니 아이들은 가장 안전하고 보호받아야 할 가정에서 공포에 떨고 있고, 부모들은 무력을 이용하지 않으면 부모 역할에 더 자신없어 하는 상황이 되기도 한다.

부모의 술 취한 모습, 아이들이 보고 배운 행동은 과연 무엇일까?

아이들을 때리고, 고통을 주는 사람들이 도대체 누구일까? 작년 한 해 동안 7,000여 건의 아동학대 의심 사례가 1391을 통해 아동학대예방센터에 신고 되었다. 그 중 4,000여 건 정도에서 학대 사실이 발견되어 아이들이 학대를 경험하고 있는 것으로 판정을 받았다. 더욱 놀라운 사실은 학대로 판정된 사례 중 83%가 부모에 의해 아이들이 학대를 받고 있었고, 그것도 가정 내에서 학대가 발생되고 있었다.

술만 먹으면 아내와 아이를 때리는 아버지, 이를 견디지 못하고 가출한 어머니, 부녀간에 딸을 성추행을 하면서도 죄의식이 없는 아버지. 이런 일들은 소설이 아닌 현실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상황이다.

특히, 술에 취해 자신의 몸도 가누지 못하고 정신이 혼미한 상황에서 아이들을 향해 욕하고, 가재도구들을 부수고, 폭력을 휘두르는 부모들을 보면서 아이들은 과연 어떤 생각을 할 수 있을까? 아이들은 어른들의 거울이라고 했다. 부모들은 가끔 자신이 한 행동을 자신의 아이가 여과없이 그대로 하고 있을 때 너무나도 깜짝 놀랄 때가 있다.

모든 부모들은 자신들보다는 더 나은 자녀들의 능력을 원하고 있고, 더 나은 환경에서 생활하기를 바란다. 그렇지만 보고 배운 것이 부모의 술 취한 모습, 비틀거리는 모습을 보면서 살아 왔다면 아이들이 보고 배운 행동은 과연 무엇일까? 곰곰이 생각해 보아야 한다.

나이에 따라 달성해야 하는 과업, 과업을 어떻게 형성하느냐에 따라 아이들의 성격도 변한다

첫 번째 단계에서는 부모와 애착(愛着)을 형성한다. 애착은 모든 사람들과의 「신뢰로운 관계」를 형성하는데 밑바탕이 되는 것이다. 안정적인 애착이 형성된 아이들은 세상은 안전하고 살만한 곳이라는 느낌을 갖게 된다. 그런데 아이와 기본적인 신뢰감을 형성해야 할 단계에서 술 때문에 아이의 욕구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내버려 두어 아이의 욕구에 응하지 않게 된다면 아이는 이 세상에 대해 불신감을 느낄수 밖에 없는 상황이 된다.

두 번째 단계는 자율을 배우는 시기이다. 이 시기에는 대소변 훈련을 하는 시기이며, 처음으로 사회적으로 제재도 받게 되는 시기이다. 특히, 이 시기에 아이들이 가장 많이 사용하는 단어는 「싫어, 내가 할 거야」 「내 거야」 등의 자율과 소유의 개념을 나타내고 있다. 그러므로 이 시기의 부모들은 아이들 스스로 놀이를 결정하도록 도와주고, 독립적인 인간임을 인식할 수 있도록 지지해야 한다. 그런데 이 시기의 부모의 단어 속에는 「하지 마」 「이것하면 매 맞을 거야」 등의 통제와 부정만이 존재하고 있다. 거기에 술이 들어가면 말로 할 수 있는 통제 상황에도 체벌이 들어가고, 거기에 강도가 더 심해진다. 이처럼 아이들이 사소한 실수에도 자주 통제받고, 제재를 받게 되면 아이는 수치심에 휩싸이게 된다.

세 번째 단계는 주도성을 기를 수 있는 시기이다. 이때의 아이는 스스로 주도한 행동이 때로 사회적으로 바람직하지 않은 행동이어서 부모로부터 체벌을 받거나 실패를 경험하게 되면 아이는 죄의식을 느끼게 되고, 그로 인해 소극적인 성격이 되거나 자신감을 상실하기도 한다. 또한, 이 시기는 중요한 「성 역할 정체성」을 배울 수 있는 기회가 되기도 한다. 아이들이 하는 가상놀이 속에서 부모의 역할을 재연해 보고, 엄마 역할과 아빠 역할을 따라한다.

그러므로 이 시기는 아이가 「부모의 모델을 보면서 부모역할을 배우는 가장 중요한 시기」이다. 그런데 이 시기에 아빠가 매일 술 먹고 들어와서 아내를 때리거나, 상을 엎거나, 아이들 앞에게 소리지르는 모습을 자주 보이면 아이들은 「아, 아빠는 엄마를 저렇게 해도 되는구나」하고 그 모습을 배우게 된다. 즉, 이 시기에 중요한 것은 부모로서 「좋은 역할 모델」이 되어 주는 것이다.

다음 단계는 학교에 들어가는 학령 아동기 시기이다. 이 시기의 아이는 지적 능력을 개발할 뿐 아니라 다른 사람과 함께 할 수 있는 능력을 키워 나가는 단계이다. 즉, 「사회성」이라는 부분이 중요한 발달과업이 된다. 학교에 들어가면서 아이들은 새로운 지식을 배워 나가며, 또래 친구들과 함께 타협하고 갈등을 겪으면서도 조화롭게 생활할 수 있는 시기가 된다. 이때 자신이 성취감, 또래집단에 비해 자신이 잘 한다고 생각되는 우월감 그리고 타인의 인정 등은 근면성 획득에 중요한 결정적 요인이 된다. 그러나 이 시기에 이런 근면성이 결핍되면 아이들은 실패를 경험할 뿐 아니라 그 결과로 열등감을 갖게 되기도 한다.

그리고 사춘기를 보내는 아이들은 부모보다도 자신의 세계에서 깊이 빠져들고 게임, 음악, 운동 등을 하면서 친구들과 은어를 쓰고 채팅을 하며 지내기를 원한다. 이 시기의 아이들은  부모 곁을 떠나 스스로 독립적인 인간이 되기를 준비하는 시기이다. 자신의 정체감을 찾아가면서….

아이들은 보호받아야 하는 소중한 존재 - 부모의 노력과 주의가 필요

이처럼 아이들은 태어나면서부터 학령기를 거치는 동안 다양한 과업에 직면하고 또 자신이 성장해 나가는데 꼭 풀어나가야 할 과제들을 해결해 나간다. 그런데 이 많은 과업들을 제대로 이행할 수 없는 여건에서 생활하고, 그들 부모로부터 배우지 못했다면 그들은 스스로 자립할 수 있는 「독립적인 인격체」가 될 수 없을 뿐 아니라 자신이 부모가 되어서도 「부모의 역할」을 잘 해나갈 수 없게 된다.

부모의 역할은 쉽지 않다. 좋은 관계를 맺고 좋은 일만 있는 것이 아니고 난관에 부딪치기도 하고 좌절하는 경우도 있다. 그렇지만 부모 역할을 제대로 하기 위해서는 어른들부터 노력하고 주의를 기울이지 않으면 안된다. 왜냐하면 아이들은 보호받아야 하는, 아직은 미약한 존재이기 때문이다. 무엇이든지 변화를 시도하면 그 진행속도는 서서히 그리고 조용히 온다. 큰 변화가 아니어도 조금씩 달라지는 부모의 모습을 보면서 아이들은 행복감을 느낄 것이다.

오늘 저녁 어른들이 좋아하는 소주 대신 통닭을 사가지고 들어가 보는 것은 어떨지 권유하고 싶다. 그리고 거기에 덧붙여 한 가지. 좋은 분위기를 마련해 두고 윽박지르고 남들과 비교하는 상황을 만들면 그 분위기는 엉망이 된다. 아이들에게 「칭찬거리와 관심」을 보이는 것부터 시작해 보면 좋겠다. 「어! 공주님, 혼자서 집을 잘 보고 있었구나」라고….